- 전시명 :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
- 장소 : 소마미술관
- 기간 : 2023.04.06~08.27
- 입장료 : 성인 15,000원 / 청소년·어린이 9,000원
- 주최 : 조선일보, 국민체육진흥공단, 디커뮤니케이션 / 주관 : 소마미술관
가족끼리 가기 좋은 서울 전시회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박수근 등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의 굵직한 작가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으며,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가족 나들이로 둘러보기 좋은 전시입니다. 고가의 가격으로 평가되거나 유명한 작품보다는 '한국의 근현대'를 테마로 하여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들을 컬렉션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은 soma 1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1관과 2관은 별도의 전시로 개별 입장료를 내고 관람할 수 있습니다.
근현대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은 물론 북한의 작가, 여성화가, 추상화, 조각작품 등의 테마로 나뉘어 전시가 이루어져있습니다. 마치 서양의 '이삭줍는 여인'과 같은 일상적인 농촌을 배경으로 한 그림처럼 당시의 일반 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보였습니다. 박수근 작가는 평범한 가정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렸습니다. 예술이란 게 대단할 것이 없고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철학이 돋보입니다.
오랜만에 고향 조선의 땅을 밟은 듯한 이 글의 화자는 당시 어떤 감정이었을지,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향의 땅을 밟고 코스모스 즉 미(美)를 떠올렸다는 점에서 얼마나 그리웠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때 본 하늘과 산, 수목, 동물 등의 물상은 그대로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전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작가, 이중섭 화가의 작품도 보입니다. 황소 작품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습작 또한 많이 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작가는 소의 어떤 점이 좋아 소를 그렸을까요? 황소의 굳세고 묵묵히 버텨내는 강인함.. 그런 것들을 보고 자신에게 다짐을 하진 않았을까요?
한 코너에는 이중섭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쓴 편지의 원본과 번역본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멀리 떠나있었을 작가의 마음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힘차게 성과를 얻을 때까지 굴하지 말고 이겨냅시다.' 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방금 봤던 황소 작품이 떠오릅니다.
이중섭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글씨와 함께 그 주변으로 갖가지 데코 그림이 그려져있습니다.
화가답게 너무나도 정성스럽게 편지를 쓴(만들어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에게 쓴 편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빨리 전시회를 열어 그림을 팔아서, 돈과 선물 많이 사들고 간다는 말이 짠하네요.. 그 때의 이중섭이나 지금의 엄마 아빠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이번엔 박생광 작가의 황소입니다. 이중섭 작가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이번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은 꼭 예술에 관심이 있지 않더라도 가족 나들이로 와서 아이들에게 옛날 얘기 들려주며 관람하기 좋을 전시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층으로 넘어가자, 한쪽 벽면 전체에 한국 근현대 미술사 연보가 걸려있네요. 년도별, 작가별로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작품 이름이 '가족도' 인데 한국 가족의 표정이 너무나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밝고 화사한 색감과는 다르게 가족들의 표정이 경직되어 있으며, 웃음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강아지의 표정도 일자눈에 일자 입인 것 같네요. 같은 시기 서양에서 똑같은 주제로 가족도를 그렸다면, 이런 표정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는 한 가족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기 보다 이 시대 우리나라 전체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2023년도의 가족 모습의 표정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물론 이때 보다는 먹고 살기가 많이 나아져서 한결 여유로워졌겠지만, 지금의 한국 가족의 표정도 이때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6.25 전쟁 이전 북한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그림들도 있습니다. '평양의 누각'이라는 그림을 보면 평양이라는 도시의 누각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남한의 남산 누각이나 여기나 외관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데,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일제 시대의 핍박, 전쟁이라는 큰 사건을 겪으면서 이 때의 인간성은 말살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인간' 이라는 작품인데 마치 전쟁터에 나가 잔혹하게 피튀김을 당하고 신체가 조각조각 해부되는 듯합니다. 작품만 보더라도 그 때의 말못할 억압과 분노, 처참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내가 왜 일그러진 인간을 그리는지 알 수가 없다.
황용엽 작가는 나도 모르게 인간을 그릴 때는 일그러진 인간을 그리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시대적으로 암울하였기에, 독재사회의 틀 안에 갇혀있었기에 그 때 느낀 인간의 어두운 감정이 예술로 표현된 것이고, 이 그림들은 그 때의 시대분위기를 알 수 있는 너무나도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의 환상은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요? 자신만의 욕심에 눈 멀어 이간질과 독재, 전쟁을 일삼는 그런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걸까요?
군상이라는 작품입니다. 서양의 시민혁명 작품이 연상되는 그림으로, 어딘가에서 모티브를 따온 그림인 것 같습니다.아래쪽에는 얼굴이 흑빛으로 변해 죽어가는 남자가 있고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사람, 옆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중앙에는 엄마 젖을 빨려고 하는 아기가 보입니다. 오른쪽으로는 눈을 부리나케 뜨고 뭔가 작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리들이 있으며, 그 뒤로는 소와 함께 산으로 도망치고 있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서로 다른 것 같은 여러 사람들이 얽히고 섥혀 있지만 이 전체가 하나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여류 작가' 라는 말은 굳이 사용하고 싶지 않고, 이 시대 작가들 중 여자들의 작가만을 따로 분리하여 전시되고 있습니다. 나혜석 시인 겸 화가는 스페인 등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들과 함께, 그녀가 남긴 말이 함께 붙어있습니다. 먼 훗날의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며 나를 기억할 것이라는 말이 멋집니다. 실제로 그 말처럼 이루어졌고요!
천경자 화가의 작품들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작가를 열심히 살게 해준 원동력으로 '꿈', '사랑', '모정' 이 3가지를 꼽는데 그림에서도 그러한 정서가 느껴집니다. 밝고 몽환적이면서도, 신비감이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꿈을 꾸는 듯한 그림입니다.
다시보다 한국 근현대 미술전은 개인전이 아니기에 작가별 많은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굵직굵직한 근현대 작가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 벽면에 크게 설치된 대형 작품입니다.
멀리서 의자에 앉아 관람한 후 다시 가까이에서 보면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추상화 챕터에서는 김환기를 포함하여, 높이 평가받고 있는 한국 추상화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미술의 국격, 한국의 추상화
20세기 세계화의 흐름에 맞춰 한국 근대미술도 동참했습니다. 동서양의 만남이자 전통과 현대의 융합, 그 중에서도 한국 추상화는 '우리'라는 자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근대의 추상화가 현대에 와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추상화.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면,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김환기 작가의 추상화를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보이는 현상을 그리는 것이 아닌,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상을 상상하여 예술로 표현한 것이 추상화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추상화가 한묵의 작품입니다. 빨간색의 ㄴTㄱ 패턴이 돋보입니다.
입체적으로 노란 선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강한 임팩트를 주는 이미지네요. 어떠한 형상도 나타내지 않았지만, 단순한 패턴과 색채의 조합으로 강한 표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흔히 추상화는 점 하나를 찍거나 붓으로 짝대기를 긋는 등 난해하면서 쉬워보입니다. 하지만 유영국 작가는 이런 단순화는 복잡성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작품을 보고 느껴보았습니다.
그 다음 섹션으로 이동하면 한국 근현대의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못지 않게 우리나라의 근현대 조각도 섬세하게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밧줄을 당기는 소년의 팔뚝과 표정에서 굳센 힘이 느껴지는데요, 팔의 근육과 미세한 힘줄 등까지 묘사되어 있어 해부학적으로도 많이 발전되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전시회를 다 보고 나온 후 소마미술관의 조각 공원을 마주하며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서양 화가의 작품들을 봤을 때보다 대체적으로 마음이 환하고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근현대 역사가 밝지만은 않았기에, 어두운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이렇게 국가가 발전하여 건실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실이 참 다행입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며 역사와 함께 한국 미술을 돌아보기 좋은 전시였습니다.
소마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며 야외 조각공원에 있는 해외 작가들의 조각들도 감상했습니다.
호상 도시라는 가상의 세계를 철조물로 나타낸 듯한데, 이곳의 도시는 어떨까 잠시 상상해보았습니다.
마치며 :가족나들이로 오기 좋은 전시로 추천!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가족들과 함께 오기에 더더욱 좋을 것 같고, 전시 후 공원을 한바퀴 돌며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근현대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볼 수 있는 전시기에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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