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명 : 마우리치오 카텔란 <WE>
- 장소 : 리움미술관
- 기간 : 2023.01.31(화)~2023.07.16(일) / 월 휴무
- 입장료 : 무료
올해 SNS에서 화제가 되고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
3월 기준 관객 10만명이 넘게 다녀갔으며 이승기, 소유진, 송민호, 차은우 등의 연예인들의 방문 인증샷이 공개되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미술관을 다녀간 후 사진을 찍어 올려 확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카텔란은 어떤 작가이길래 이렇게 이슈가 되고 있는 걸까요?
리움미술관으로 향해보았습니다.
10만 관객 돌파, 빌바오 효과*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가 1월 31일부터 오픈한 이래 치열한 예약 경쟁은 물론 발걸음이 끊이지 않자, 이른바 '리움판 빌바오'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이태원 참사의 여파로 발길이 뜸했던 분위기에서 전시회를 다녀가는 사람들로 상권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 : 한 도시의 건축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 스페인 북부 소도시 빌바오에서 비롯되었으며, 당시 쇠락하던 빌바오에 구겐하임미술관이 들어서자 관광업이 호황을 이뤘다. 한 도시의 건축물이 그 도시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관람하기 전 야외에 있는 조각물 또한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죠.
영국의 유명 조각가인 애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마당 정중앙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주변의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이 느껴졌는데, 미술관을 더욱 미술관답게 만드는 조형물인 것 같습니다.
거대한 은구슬이 비정형적으로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이 인위적이지 않고 이 공간과 잘 어울렸습니다.
<관람 Tip> 1) 예약 시간 3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합니다. 2) 주말의 경우 예약을 했더라도 대기줄이 길 수 있으니, 일찍 오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3) 1층 카운터에서 헤드폰을 대여받아 무료 오디오 도슨트를 들을 수 있습니다. 4) 작품명의 QR코드를 찍어 스마트폰으로 작품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의 특징은 전시장 곳곳에 동물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입장하기 전부터 카운터에 선반 위에 비둘기떼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있는데요, 마치 비둘기들이 우리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람을 하면 할수록 비둘기들을 여기저기서 더욱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아닌 박제된 비둘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1층 전시장 메인 홀 천장에는 큰 말 한마리가, 위층 벽면에는 말의 뒷모습만을 박제한 벽장식 작품이 있습니다. '말' 하면 떠오르는 힘차게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통해 인식의 근간을 순식간에 뒤엎습니다. 밧줄에 묶여있는 모습은 자연스레 '죽음'을 연상시켜 한 때 힘찬 말발굽 소리로 달렸던 이 생명체도도 끝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다소 기괴한 작품들이 많으나, 모든 작품들은 우리에게 생각의 전환을 '도발'시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1억 4천만원' 논란의 바나나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작품은 바로 생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여놓은 <코미디언>입니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선보였고, 12만 달러 (한화 약 1억 4천만원)라는 거액에 거래가 되면서 전 세계로 이슈 토픽이 된 바 있습니다. 심지어 바나나를 먹어 사라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는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작품이 존재했었다는 정품 인증서'를 판매함으로써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논란의 중심에 서기까지에 앞서 카텔란은 '바나나'를 주제로 한 작품 출품을 위해 고민하던 중 레진, 청동 등의 재료로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바나나는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바나나 그 자체여야 한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게 그는 예술 역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아트 바젤 (Art Basel) : 매년 개최되는 국제 아트 페어로,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예술계의 올림픽' 같은 행사인 셈이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가 전시 중심이라면, '아트 바젤' 은 화랑과 작가, 컬렉터, 화상들이 만나는 시장에 해당된다. 그만큼 미술계의 흐름과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기에 좋다.
비둘기와 말 이외에 '개'를 이용한 작품들도 몇몇 있습니다. 여기 큰 개 두 마리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가운데에 작은 병아리가 있네요.
발톱, 털 끝 하나 생생하게 극사실주의로 묘사해서 그런지 개와 병아리 크기의 대비감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두 개들 사이에 연약한 병아리를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는 단순히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을 해보게끔 됩니다.
표독스러운 표정의 이 남자는 누구일까요?
(작품 앞면) 뒷모습만 보면 키 작은 소년이 교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는 것 같은데
(작품 뒷면) 얼굴을 보니 중년의 아저씨가 있습니다.
작품명은 '그' 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였으나 우리는 '히틀러' 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두손 모아 무릎을 꿇고있는 것으로 보아 참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과연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는 죽었지만 역사는 죽지 않고 회고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것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이방인', '외부인' 의 시선에서 엿보는 듯한 인물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표현한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뿌리부터 예술가가 아닌 그는 보수적인 미술의 세계에서 언제나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융화되지 못하고 겉에서 맴돌며 힐끗힐끗 쳐다봐야했던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것만 같아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특히 그의 자화상에는 몰래 훔쳐보는 듯한 표정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작품을 통해 '소외' 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합니다.
전시장 내에는 기이하다 못해 다소 충격적인 작품들도 있으니, 어린이나 노약자는 놀라지 않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냉장고 안에 '어머니'가 들어가있는 듯한 이 작품도 그러합니다.
꽃무늬 주름치마와 뽀글머리로 보아 '어머니'를 표현한 것 같은데 얼굴은 카텔란 자신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와 냉장고는 잘 어울리지만,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어머니는 괴상한데 '어머니'의 표정은 유독 편안해 보입니다.
냉장고 속에는 캔콜라와 잼, 달걀과 오렌지 등 너무나도 익숙한 현실속 재료들이 있어 냉장고와 어머니가 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 라는 이름의 이 작품도 역시 뭔가 섬뜩한데요.
두 노인이 검은색 양복을 입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고있어서 마치 '장례식'을 연상시키게 하고, 비좁은 침대는 '관'이 연상되는데요. 두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쌍둥이인 것 같습니다. 한 명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사선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이 작품. 여러분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하시나요?
'우리'는 '연대'하는 존재
작가는 우리 사회 전체의 연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자 합니다.
전시명에 <WE> 가 들어가있는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카텔란이 실제 뉴욕 여행 중 시장에서 발견한 캔버스를 그대로 무대로 옮긴 레디메이드 작품입니다.
I ❤ NY 슬로건은 미국 뉴욕 주의 실제 슬로건으로, 9.11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연대 의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낙서를 한 이 캔버스를 작품으로 채택하면서,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음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여기에도 비둘기를 박제하여 자연스럽게 달아둔 포인트가 있네요.)
1960년생 이탈리아 사람 답게 자국의 지도가 그려진 카페트를 작품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그냥 카펫이 아닌 '작품'이기 때문에 밟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카텔란의 거의 모든 작품을 한 곳에 모아 축소해놓은 조형물입니다.
말과 히틀러, 교황, 침대위의 노인 등 이번 전시에도 소개된 작품들이 보이네요.
이 외에도 마르셀 뒤샹의 '샘' 에 이은 '황금 변기' 작품도 보입니다.
이 조각품은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나귀/개/고양이/까마귀 뼈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이 작품. 마치 자연사 박물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이 작품은 그 옆에 있는 <가족>과 같이 봐야 해석이 쉬울 것 같습니다.
그림 형제의 '브레맨 음악대' 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박제 동물이 꽤나 현실적입니다.
야생의 숲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서로 모여 '가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뼈로 남아있는 지금 이들은 가족을 그리워할까요?
아마도 뼈로 될 때까지 4층 구조의 대형이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된 것으로 보아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고, 그렇게 영원한 가족이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죽어있는 듯한 사람과 그 옆에서 목을 내밀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개 한마리. 카리라 대리석으로 만들어 차가운 느낌과는 반대로, 주인과 개의 깊은 우정이 보여 마음 한켠으로는 눈물겨운 따스함이 흐릅니다. '우리' 에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할 것 없이 하나의 '우리' 임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딱딱한 제복에 총과 무기를 차고 있는 경찰들. 하지만 경찰이 거꾸로 서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만 하고 있네요.
공권력을 지니고 있지만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찰을 비유로 들어 정부의 모습을 풍자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여기 또 센세이션하게 미술계를 도발한 작품이 있지요.
위 사진 속 주인공은 갤러리스트 '마시모 드 카를로'로, 밀라노에서 카텔란의 작품 거래를 담당하였습니다. 갤러리스트는 주로 갤러리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고가에 판매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요. 전시회에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데, 카텔란은 이 갤러리스트를 벽에 붙여 테이프로 칭칭 감아 사진을 찍고는 작품으로 내걸었습니다.
미술품의 가격을 만드는 갤러리스트가 작품으로 '전시당하자' 관객들은 예술품의 가격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는 무례하고 뻔뻔한 태도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우리 인식의 근간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립니다.
역사의 사건을 작품으로 표현한 이 부츠 속 식물. 1930년대 나치 정권의 탄압으로 철거될뻔한 독일의 유대교 회당이 한 농부가 그 곳을 곳간으로 사용하면서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카텔란은 이러한 역경 속 '저항 정신'을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 에서 모티브를 따와 부츠에 식물을 심어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면 빨간 바닥 위에 '시신'들이 널그러져 있는 작품들을 처음 마주하게 됩니다. 어디에서도 '시체' 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 속에 우리느 그것들이 '시신' 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흰 천의 주름 디테일 하나하나 너무나도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실제 시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는 모두 카리라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과거 전쟁부터 최근 우리에게도 벌어졌던 대규모 참사 등을 연상케 하면서 이들을 추모하고자 이런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3층의 끝 쪽 방 안으로 들어가면 흰 천을 두른 코끼리가 서 있네요.
눈과 코만 내밀고 나머지는 다 천으로 덮고 있는데, 이 천은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결사단체인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KKK)의 전형적인 의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방 안에 배치시킨 것은 '방 안의 코끼리*' 처럼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얘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풍자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 모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말을 꺼낼 경우 초래될 위험이 두려워, 그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는 문제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다음으로는 아까와는 반대로 아주 작은 미니어처 크기의 방 안에 다람쥐가 앉아있네요! 엇, 아니 죽어있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옆에는 권총과 위스키가 놓여져 있는데요, 과연 이 다람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귀엽고 작은 사이즈에 앙증맞은 파스텔 컬러의 책상과는 반대되는 주제로 인해 우리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줍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 대망의 마지막 작품으로는 나무 상자로 된 방 안에 있는 벽화들입니다. 이탈리아 바티칸시티의 시스티나 대성당 속 미켈란젤로의 벽화를 그대로 따라 그렸다고 하는데요, 진짜 못지 않게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진짜와 가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실제 시스티나 대성당 오리지널 버전의 그 느낌과는 비교 불가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화무십일홍'
바로 앞에는 교황이 큰 운석에 맞아 쓰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운석이 지구로 날아와 한 사람을 쓰러뜨리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미세한 확률을 뚫고 한 때 권위의 상징이었던 '교황'이 쓰러지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살아 생전의 명예와 권력도 다 소용 없죠. 또한 권위와 지위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때때로 바뀌는 가변적인 요소입니다. 종교를 떠나 인간의 권력에 대해 돌이키게 만드는 작품이지 싶습니다.
🖌총평
익살스럽고 냉소적으로 인간 사회의 모습을 명확하게 직시한 카텔란의 작품은 우리에게 인식의 전환을 통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전시 제목 <WE> 처럼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며, 미술에 대해 몰라도 사회 비평과 사회 연대에 대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센세이션한 도발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로 인해 SNS 속 인증샷 열풍은 한동안 계속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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