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생각 없이 골라 본 영화가 오랫동안 심금을 울린 경험 있으신가요?
2012년 프랑스 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아무르가 바로 그러한 영화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은데,
오늘은 영화평론가의 해석을 통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금종려상 : 칸 영화제 초청작 가운데 최고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대상'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 아무르 소개
2012년 국내에서 개봉한 프랑스 영화 아무르는 포스터만 봤을 때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AMOUR' 뜻이 프랑스어로 '사랑' 이라는 뜻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래된 부부의 애틋하고 절절한 로맨틱 스토리이기보다는 인간의 생과 죽음 사이에서의 부부의 심정 변화,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 등에 대해서 담고 있어서 과연 이게 사랑이 맞나 싶습니다.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도 영화와 같은 일들이 남일처럼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120분 가량 되는 영화가 흘러나오는 내내 등장 인물과 배경은 이 노부부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영화상에서 어떤 흥미진진한 장면이나 감정이 벅차오르게 만드는 인위적인 요소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카메라가 정적인 순간들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업영화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화면들이 고요한데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 내면의 심리와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감독의 작품세계
영화 '피아니스트(2022)' 감독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출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빈 대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서는 사건이나 스토리 중심의 화면 전개 보다도 등장인물의 심리적 진실이나 감각에 대해 치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일상 속 폭력 및 권력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집요하게 묘사한 영화들이 많습니다.
유튜브 채널 '영화당'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아무르」와 「해피엔드」는 느슨하게 연결된 2부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아무르(2012)의 에피소드를 해피엔드(2017)에서 언급하지만 완전히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느슨하다고 표현한건데요. 김중혁 작가는 '조르주', '안느', '에바', '조지' 등의 극 중 이름들이 각기 다른 영화에 똑같이 등장한다고 분석 했습니다. 이어질듯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사실은 이 모든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요.
영화 줄거리 및 해석
영화 도입부는 음악가 출신인 두 부부가 제자의 피아노 연주회에 참석을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쁘게 차려입고 콘서트를 보러가는 등 안정적으로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는 초반의 모습은 마냥 행복해보이고, 고민이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집 밖의 씬을 보여주는 장면은 도입부 뿐이며, 그 이후부터는 아내가 아프게 되어 영화가 끝나는 내내 오로지 집 안에서 간병을 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관객은 아내의 병으로 인한 고통을 함께 버티는 남편 '조루즈'의 심적 상태를 그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치매와 뇌졸증 증세를 보이는 아내는 결국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하였지만, 크게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체적·인지적 기능이 퇴화됨에 따라 유아기보다 더 어린애처럼 행동하게 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마저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를 바라보는 남편 역시 시간을 거듭할수록 지치고 자신도 역시 곧 아내처럼 '죽음'을 향해 가고있다는 공포감을 느낍니다.
두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로는 잠깐 노부부의 집에 방문하는 딸과 제자이며 비중 또한 굉장히 적습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2시간 내외로 상영되는 영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스토리 전개에 따라 엄마의 병에 대해 얘기가 오고가야 할 것 같은데, 그 내용은 가장 뒤로 미루고 영화 스토리 상 전혀 상관없는 부동산 얘기 따위 등을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뒤에 올 수 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지만, 가장 미루고 싶고 끝까지 미뤄두고 싶은 주제도 역시 바로 죽음인 점을 영화에 고스란히 녹여냈습니다.
또한 집 안에서 노부부의 삶에만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제한된 환경 속에서 제한된 두 사람이 영화의 스토리를 전개해나갑니다. 노년의 삶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얘기하듯, 대부분의 나이든 노인들은 나이들수록 만나는 사람이 극히 줄어들고, 이 영화처럼 주로 집에서 생을 이어나간다는 점을 잘 묘사했습니다.
아내를 부축하는 장면 등 '쓸데없이' 롱테이크로 길게 표현한 장면들 역시 노부부가 느끼는 감정이나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쓸모없음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냈는데요. 이는 집에 찾아온 제자의 '바가텔' 연주를 통해서도 감독의 의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가텔(bagatelle) 뜻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아내는 왜 제자에게 '바가텔'을 연주하게 했을까요?
김중혁 작가는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삶에 집적이 되고 그것이 삶의 한 형태가 된다고 가르친 선생님을 위해 연주하는 것' 이라고 해석하며, "미뤄두었던 죽음이 곧 다가올 테니, 그동안 모아두었던 너의 삶을 보여주지 않겠니?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라고 말했습니다. 필요 없어보이는 요소들도 삶에 꼭 필요한 요소인 것처럼 영화 속에 녹아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늙음'과 '죽음'의 두 영역 중 과거에는 '늙음'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치중되었던 반면, 최근에는 인구고령화로 인해 '죽음' 뿐만 아니라 '늙어가는 것' 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주변에 한두명쯤은 이렇게 늙어감으로 인해 고통받는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자기의 자존감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감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지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식들을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이 금전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이 영화에 그대로 묘사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배우자를 떠나보내는 것은 부모를 떠나보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문제와 나도 곧 따라가게 될 것이라는 이중의 문제가 발생되는 셈입니다. 때문에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치매에 걸린 아내가 아니라, 그런 아내를 보고 있는 남편 '조르주' 가 진짜 주인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아무르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유
이 영화는 사랑영화도, 공포영화도 아닌 그냥 현대 유럽 사회의 현실을 가장 냉철하게 바라보고 예술적으로 반영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인 '가정', 그 중에서도 중산층 가정이 맞닥뜨리고 있는 불안과 고통, 황폐한 모습을 서늘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카엘 하네케의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 질문 중 "왜 고통에 천착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 감독은 "고통이 두렵고, 특히 육체적 고통이 너무 두렵다" 라고 답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 그것도 미지의 순간에 대한 일어난다는 공포감이 있는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주제인 '고통'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명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론가들의 한줄 감상평
고통을 성숙한 시선으로 지긋이 응시하는 영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생각날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한번쯤 겪어야 할 울림이 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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