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수 마을을 일컫는 '블루존'을 들어보셨나요? 수백 년 이상 다른 지역에 비해 건강하게 장수하는 마을을 '블루존'이라고 칭하며, 전체 인구수 대비 100세 이상 건강하게 사는 비율이 많은 곳입니다.
기자 출신 장수연구가 댄 브튜너는 블루존을 다니며 얻은 인사이트를 책과 다큐로 기록했습니다. 2009년에 'Blue Zones'라는 책을 발간했으며, 그의 연구 결과를 2023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100세까지 살기-블루존의 비밀'로 볼 수 있습니다.
블루존의 공통점 4가지
블루존으로 꼽히는 곳은 오키나와(과거), 이탈리아 사르데냐 산악 지대 마을, 캘리포니아 교외 지역 로마 린다(Loma Linda), 그리스 이카리아 섬, 코스타리카 니코야 반도, 싱가포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블루존에는 특정한 패턴들이 관찰되었는데, 그 공통 요소는 다음과 같은 4가지 항목이 있습니다.
1. 자연식(채식) 위주의 식습관
블루존에서 장수하는 사람들은 가공식품을 먹지 않는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육식의 비중은 약 5% 미만으로 낮았으며, 대부분 채식 위주로 먹는다는 겁니다.
- 오키나와 : 자색고구마, 두부, 오징어먹물, 텃밭 야채(여주, 쑥, 뽕잎), 하라하치부(小食, 80%만 배를 채우라)
- 니코야 : 옥수수 토르띠야, 콩, 호박
- 이카리아 : 올리브오일, 감자, 통곡물, 콩, 염소젖, 꿀, 허브차, 와인
- 사르데냐 : 파스타, 토마토, 가지, 염소젖, 치즈, 와인
- 로마 린다 : 종교(재림교)의 영향으로 과일, 채소, 견과류를 즐기며 육식은 반찬으로 곁들이는 정도로 최소화
우리나라에서는 '건강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밀가루와 탄수화물은 안좋고,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요. 위 블루존 식문화를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핵심은 육류의 나쁜 콜레스테롤 섭취를 줄이고, 과채식을 통해서 탄수화물-단백질-무기질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입니다.
다만 사르데냐의 주식인 파스타는 천연발효된 반죽으로 만들어 우리가 흔히 먹는 정제된 밀가루와는 다릅니다. 발효된 반죽에는 젖산균이라는 좋은 박테리아가 들어있어 균 혈당을 낮춰줍니다. 이카리아의 염소젖, 치즈, 꿀의 경우에도 마트에서 구매하는 제품과는 제조 방식이 다릅니다. 자연 그대로의 원료로 먹느냐 가공되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카리아 사람들이 올리브오일을 먹는다고 무조건 올리브오일이 좋다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육류나 가공식품을 섭취하지 않은 채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올리브오일을 활용해 먹는 것이니까요.
👉포인트 : 육식과 가공식을 줄이고, 과채식을 통한 영양 밸런스 맞추기
2. 일상 속 저강도 운동
블루존 주민들은 헬스장이나 PT 등 돈을 내고 운동 프로그램을 결제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로마 린다 지역을 제외하고는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집안 일 하면서, 정원 가꾸면서, 친구들과 웃고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이웃집을 방문하면서 운동을 합니다.
- 오키나와 : 집안일, 텃밭 가꾸기
- 니코야 : 집안일
- 이카리아 : 소모임 댄스로 자연스럽고 즐겁게 칼로리 소모
- 사르데냐 : 남성 대부분이 '양치기' 활동으로 도보량 약 8km (남성 장수 비율⬆), 경사진 마을이라 자연스럽게 언덕 걷기
- 로마 린다 : 재림파의 건강에 대한 교리로 활동성 중시, 스포츠 활동 ⬆
👉포인트 :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고통과 인내를 건강으로 바꾸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내 일상을 즐겁게 살아가니 저절로 운동도 되더라 하는 식
3. 커뮤니티로 소통 활성화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있는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블루존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오키나와 : '모아이'라는 끈끈한 친목 계모임
- 니코야 : 주로 오전에 일하고, 오후시간에는 가족과 여유롭게 생활
- 이카리아 : 파트너 관계 중요시, 이웃간 스몰톡 및 왕래⬆, 마을 사교 파티
- 사르데냐 : 가족 및 주변 노인 돌보기
- 로마 린다 : 신앙 공동체 활동, 봉사활동
블루존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많음에도 요양원 등의 돌봄 시설이 없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요양원에 들어가면 통계적으로 약 3~5년 이상 일찍 죽는다는 말도 있듯이, 환경과 시설이 좋더라도 인간은 고립된 존재로 살 수 없나 봅니다. 고립감이 엄청난 통증의 고통과 비슷하게 느낀다는 뇌과학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요.
👉포인트 : 가족, 친구, 주변 이웃과 소통해야 합니다. 나이든 부모를 돌보고 연대감을 느끼는 것은 모두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성원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음)
4. 목적의식이 있는 삶
그냥 흘러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일과 봉사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가치있으며, 스스로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라는 건강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오키나와 :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키가이', 일에 대한 사명감이 높고 '은퇴'라는 단어가 없다.
- 니코야 : 플란 데 비다(Plan de Vida), 즉 아침에 일어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
- 로마 린다 :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기여하는 봉사활동
넛지를 활용한 해외 공공정책
위의 4가지 블루존 특징을 각 개인이 실천하면 너무나 완벽하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가공식품을 소비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으며, 장시간 사무업무와 기계 대체로 활동량 감소, 극도의 경쟁 사회로 개인주의 심화, 1인 가구 및 독거노인 증가라는 시스템적 걸림돌이 있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취미나 운동도 할 여유가 없고, 친구들과의 사교 모임에 참여하기 힘들며, 좋은 음식을 사 먹기 힘들기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돈 많은 부자들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건강한 나라
vs
누구나 건강을 누릴 수 있는 나라
반면 아래의 해외 정책 사례들은 '넛지' 전략을 활용하여 모두가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철저하게 정부 주도하에 계획된 도시국가입니다. 길거리에 껌이나 침을 뱉으면 80만원 벌금을 내는 등 정부의 개입이 센 나라로 유명하죠. 지나치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어왔지만, 과거 기대수명이 낮은 나라에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부유한 나라 중 한 곳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음식(食)
✔음식점 메뉴 선택 시 '덜 짜게' 옵션
외식업 판매자 대상으로 메뉴판에 '덜 짜게' 혹은 '덜 달게' 등의 옵션 추가를 의무화하여, 시민들이 보다 건강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선택의 폭을 높여주었습니다.
✔ 흰쌀 가격 > 현미 가격
보통의 나라들은 건강에 좋은 현미나 잡곡의 가격이 더 비싼 반면, 싱가포르는 세금을 활용하여 현미 가격을 쌀 가격보다 낮췄습니다. 때문에 가격도 더 저렴하고 건강에도 좋은 현미를 안 살 이유가 없게끔 만들었습니다.
✔ 탄산음료 당 함량 제한
싱가포르 내에 유통되는 코카콜라 등 탄산음료는 타 국가와는 다르게 당 함량이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설탕이 적게 들어가 남녀노소 보다 건강하게 음료를 섭취할 수 있습니다.
주거(住)
✔ 주택 자가 소유 정책으로 자가율 90%
싱가포르는 정부 지원금으로 국민 대다수에게 안정된 주거 생활을 제공합니다. 세입자가 아닌 자가 소유 형태로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어 '내집마련'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됩니다. 주택자 80% 이상은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영구 임대 공공주택에 거주하며, 거주 기한은 99년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집이기 때문에 집 주변을 더욱 깨끗하게 이용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부모-자식 근접주택 보조금 지원
독립한 자녀와 그의 부모가 근접한 주택에 거주할 경우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싱가포르가 예전과 달리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자녀가 직접 부모를 케어하게끔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고안해 낸 방법입니다. 한 집에 같이 사는 불편함은 없고, 이웃 동네에 따로 살되 거리가 인접하여 왕래를 자주 할 수 있게끔 하여 가족 간의 소통을 활성화합니다. 지원금도 받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 근접주택 거주 비율이 높으며, 자연스레 노인은 물론 전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였습니다.
✔ 샌드위치형 주상복합 형태
우리나라처럼 민간 아파트 대신 정부 주도하의 공공 주택이 많은데, '샌드위치형' 공간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1층은 광장과 식당가 등으로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장소로 만들고, 2층은 메디컬·헬스 증진 센터 등의 복지 시설, 그리고 맨 위층은 노인 우대 층인 점이 인상적입니다. 노인들이 옥상에 자주 올라가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넛지를 활용했습니다.
교통 (交通)
✔ 자동차 가격 및 자동차세 인상
작은 땅덩어리의 면적 대비 인구는 많아 자동차보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 정책이 발달했습니다. 자동차 이용자수가 많으면 도로가 쾌적하지 않고, 그만큼 차도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동차 판매가 자체를 높였는데요. 미국 자동차 시세 대비 약 2.5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를 소유할 경우 들어가는 각종 세금 등이 비싼 편입니다. 때문에 자차 소유 비율이 15%대로 낮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많이 걷기 때문에 비만률이 낮고 시민들의 건강이 증진됩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소타주 정부 주도 하에 이웃 주민들끼리 소그룹 운동 모임을 결성하게 하였으며, 이 때 맺은 인연으로 오래도록 꾸준히 사교 및 운동을 하는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또한 차도보다 동네에 산책할 수 있는 공원과 걸을 수 있는 인도를 늘렸으며, 봉사 모임도 활성화 했습니다.
100세 시대, 인생을 길게 보자
부를 축적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것도 좋지만, 좋은 음식을 먹고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생활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나날들로 냉동고에 밀키트와 간편식이 쌓여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과채식 위주로 먹고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걷고 움직이며, 주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매일 아침 일어날 때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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