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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의 이유, 언어자본 한정어와 정밀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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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데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되시나요? 오늘은 부부싸움의 이유 중 하나인 '언어자본'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부부싸움 이유, 언어자본 차이

 

 

언어자본이란?

말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문화적 코드입니다. 성장 과정의 차이로 사람마다 갖고 있는 '언어 자본'은 다릅니다. 언어학자인 번스타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크게 상류층과 하류층 계급에서 언어자본이 달랐으며, 이를 정밀어와 한정어로 구분했습니다.

 

 

정밀어

장점

  • 가치중립적이고 밸런스를 맞춰 표현한다.
  • 잘 가다듬어서 정제된 표현 방식으로 말한다. (수사학적 우월성)
  •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한 단어로 확실하게 얘기한다.

단점

  • 추상적이고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한정어

장점

  • 간단하고 빠르게 핵심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로 적합하다.
  • ‘타고난 재치’의 언어이다.

특징

  • 줄임말 사용 
  • 모호한 지칭과 지시대명사
  • 진부한 형용사 사용
  • 비하, 비난하는 용어
  • 잘못된 관용 표현
  • 문법적 오류
  • 웅얼거리는 발음
  • 길고 장황한 설명

단점

  • 강렬하고 감성적으로 굵고 짧게 호소할 수 있으나, 천박함과 실수로 변질되기 쉽다.

 

 

상류층에 가까울수록 정밀어와 한정어를 상황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여 사용할 줄 아는 반면, 하류층 또는 어렸을 때 언어 자극을 원활하게 받지 못하고 자랄 경우 한정어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밀어와 한정어 나름대로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둘을 섞어서 쓰는 것이 베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각자의 언어자본이 다르면 어떨까요? 한쪽은 정밀어 위주로, 상대방은 한정어 위주로만 사용할 경우 아래 사례처럼 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사례 1.

정밀어 사용자는 지시대명사와 줄임말로 짧고 모호하게 얘기하는 한정어 배우자가 어휘력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침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그거 땡겨!' 라고 얘기했다고 칩시다.

남편은 다음 할 일이 있는 바쁜 상황에서 짧고 빠르게 얘기하기 위해 '땡겨' 라는 한정어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밀어를 사용하는 아내라면, 다음과 같이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의미로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땡기라는 걸까? 이불을? 매트리스를? 매트리스 위 전기장판을? 아님 침대 본체를? 베개를?
그리고 어디로 땡기라는 걸까? 위로? 아래로? 아님 특정 모서리에 맞춰서? 정 중앙에?
왜 땡기라는거지? 어디 각도가 비뚫어졌나?'

 

 

한정어

 

 

반면 한정어 사용자척하면 척! 알아서 눈치껏 알아듣기를 기대하는데, 그렇지 못한 정밀어 사용 배우자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

'내가 뭘 땡기길 원하는지 내 손짓 보고 이해가 안 되나? 왜 다시 뭘 땡기냐고 물어보는 걸까?
전기장판 땡기라고 알려주니까 이제는 어디로 땡기라는지 또 물어보네'

 

 

부부 소통 문제

 

 

위 상황은 2인용 침대 위에 1인용 전기매트가 한쪽 끝에만 맞춰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평소 추위를 타는 사람 쪽에만 전기매트를 두었는데, 남편은 이제 날씨가 더 추워지니 둘이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가운데로 옮기자는 뜻에서 땡기라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잘만 얘기하면 매너 있고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는 내용인데, 한정어를 사용함으로 인해 부부 사이 혼란이 가중되며 싸움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한정어 정밀어 
땡겨! 우리 이제 추워지니까 전기매트 같이 쓸까? 전기매트를 가운데로 옮기자
그거 말고 그 위에꺼! 이리로 땡겨! 매트리스 말고, 매트리스 위 전기매트를 가운데로 옮기자.
이제 추워지니까 전기매트 같이 쓰자.

 

 

사례 2.

집 식탁 위에서 멀티쿠커로 낙지 샤브샤브를 해 먹다가 2차로 냄비에 옮겨 칼국수를 끓이는 상황. 남편이 부엌에서 칼국수를 끓이며, 식탁에서 아직 남은 음식 먹고 있는 아내에게 '정리해!'라고 말합니다. 정밀어를 사용하는 아내는 정확하지 않은 언어 표현로 인해 답답함을 느낍니다. 뭘 정리하느냐고 물으면 '그거' '그거'라는 대답만 들려옵니다.

'뭘 정리하라는 걸까? 식탁 위에 음식 흘린 것이 있으니 그걸 닦으라는 뜻일까? 아님 메뉴가 낙지샤브샤브에서 국수로 바뀌었으니, 어울리는 반찬으로 세팅을 다시 하라는 걸까?, 아님 남은 음식 먹지 말고 버리라는 의미일까?' 그거가 대체 뭐냐는 거냐?!

 

 

정밀어

 

 

남편은 자기가 주방에 나서서 열심히 칼국수를 끓이고 있으니, 식탁에 앉아있는 아내가 이제 쓰지 않을 멀티쿠커를 자리에서 치워줬으면 합니다. 식탁 위에 자리 차지하고 있는 멀티쿠커를 치우면 좀 더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라고 얘기했는데도, 아내는 또 알아듣지 못하고 뭘 치우냐고 되묻습니다. 언제까지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한정어 정밀어
정리해! 우리 이제 멀티쿠커는 필요없지?
내가 칼국수 끓이는동안 멀티쿠커는 자리에서 치워줘.
칼국수 먹을 때는 식탁 넓게 쓰자.

 

 

부부 대화

 

 

이러한 사례들이 반복될 경우 소통의 답답함이 쌓여, 저 사람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기게 됩니다. 특히 한정어 사용자는 바깥에서와 집에서 하는 대화 방식이 다른데, 사회생활 할 때에는 정제된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나 집에 들어와서는 자기가 편한 '한정어'만을 쓰기 쉽습니다. 한정어는 주로 편한 사이에서 주고받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 한정어가 오고 가기 쉽고 그만큼 대화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이 성장한 가정이 지시대명사로 소통하는 환경이었다면 독립한 후 가정에서도 똑같이 한정어를 사용할 것입니다.

 

한정어가 하류층 노동자 계급에서 많이 사용하는 언어라고 해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노동자 가정 등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빠른 시간 안에 말을 효율적으로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한정어'가 발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휘 능력이 떨어진다기보다 환경적·바쁜 상황적 이유로 인해 짧게 말하는 것입니다.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은 바디랭귀지나 눈치코치로 소통합니다.

 

 


 

 

해결 방법

부부가 대화 방식의 차이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그 공통된 대화 패턴이 정밀어와 한정어의 차이라면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요? 각자의 말하는 습관과 상대방의 언어 패턴을 이해해야 합니다.

 

정밀어 사용자는 최대한 그 상황에서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적 정보 외에도 바디 랭귀지, 눈빛, 앞뒤 맥락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헤아려 비언어적 소통을 캐치해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 본인이 이해한 바를 명확한 언어로 다시 질문하는 확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한정어 사용자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이거, 저거, 그거 등의 지시대명사나 줄임말 대신 정확한 어휘를 사용하여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또 창문을 열어달라고 얘기하고 싶으면, 어정쩡하게 '집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라고 돌려 말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냄새가 나니 창문을 열어줬으면 좋겠어'라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언어화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알아서 자신의 니즈를 캐치해 낼 것이라는 기대는 내려놓고, 상대방이 애매한 상황에서 눈치를 보지 않게끔 자신의 의도를 전달해야 합니다.

 

한정어 정밀어
냄새 나는 것 같지 않나? 냄새가 나니 창문을 열여줘. 그러면 환기가 잘 될거야.
아.. 힘들다.. 화장실 청소 하려고 했는데, 어제 야근을 해서 몸이 좀 힘드네.
이번에는 나 대신 당신이 해줄 수 있어? 다음에 내가 당신일 할 때 대신 할게.
**시에 도착 점심에 샐러드를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다.
도착하자마자 빨리 밥먹을 수있게 미리 준비해줘.
**시에 도착 예정인데, 그 전에 도착할 수도 있어.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얘기해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애 초반이 아닌 부부 사이는 서로가 편하고, 상대방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말을 짧게 하기 쉽습니다. 이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환상의 케미를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 정밀어를 잘 사용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대화는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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